지난 5월, 바티칸 시노드홀에서 막 즉위한 레오 14세 교황이 첫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인공지능(AI)을 교회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내세우며, “AI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과제”라고 못 박았습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시절부터 이어진 기술 담론을 잇겠다는 포부였죠. 그런데 문제는 이 담론의 방향입니다. 교황의 메시지는 인류에게 필요한 미래 비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과 경계심을 부추기는 반지성주의적 색채가 짙었습니다.
“AI는 인간을 대체해선 안 된다”는 앵무새 발언
레오 14세가 반복한 주장은 간단합니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인간을 대체해선 안 된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사실 누구도 AI가 인간 자체를 통째로 대체하자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기술 개발자들이 말하는 건 “AI가 단순 업무를 줄여 인간이 더 창의적인 활동에 몰두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하지만 교황은 이런 긍정적 가능성은 외면한 채, “AI는 영혼이 없으니 인간의 지성을 넘볼 수 없다”고 우월감을 강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새로울 게 없는 자화자찬만 되풀이한 셈입니다.
과학 발전을 신앙 위기와 연결하는 구태
더 아쉬운 대목은 교황이 기술 진보를 곧잘 영성 위기와 연결 짓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성은 빈곤해지고 있다”며 해답은 영적 성찰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지식과 과학에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종교적 처방만 강조하는 전형적 반지성주의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AI를 두고 “인간이 하나님을 망각하고 전능한 존재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경고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기술에 맹신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 자체를 마치 신앙의 적처럼 몰아붙이는 태도가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딥페이크와 ‘AI 사제’ 논란, 과민한 대응
교황청은 AI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거의 공포 마케팅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딥페이크 문제를 두고 “진리를 왜곡하는 위협”이라 규정한 일이 있습니다. 2023년 유행한 ‘발렌시아가 교황’ 합성 사진을 두고, 사람들은 해프닝으로 웃어넘겼지만, 바티칸은 이를 심각한 신앙 위기처럼 다뤘습니다.
비슷한 과민 반응은 ‘AI 사제’ 실험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한 단체가 신앙 Q&A 챗봇을 “저스틴 신부”라는 이름으로 공개했을 때, 가톨릭계는 즉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실제 성사를 집전할 수도 없었는데도, “사제 흉내”라며 하루 만에 신부 복장을 평신도로 바꿔야 했습니다. 스위스에서 실험한 ‘AI 예수 설교’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구 목적의 단순 대화형 프로그램이었지만, 교계 일각에서는 “AI가 신의 자리를 넘본다”는 과장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새 기술을 차분히 탐구하기보다는, 마치 이단을 몰아내듯 성급하게 단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규제만 외치는 리더십, 미래 구상은 실종
레오 14세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규제’입니다. 그는 각국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AI 발전에 대한 통제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AI를 어떻게 인류의 선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청년 세대가 AI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영성이 위기다”라는 추상적 우려만 되풀이하는 겁니다. 결국 남는 건 “멈춰라”라는 신호뿐입니다.
AI 시대의 교황, 뒤로 걷고 있나
레오 13세가 산업혁명기에 노동 문제를 교회의 사회교리로 발전시킨 것처럼, 오늘날 레오 14세에게 기대됐던 건 디지털 혁명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윤리적 나침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시대착오적 경고와 불신만 남겼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교회는 늘 강조합니다. 그런데 정작 지금 AI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는 다름 아닌 교황 본인처럼 보입니다.
기술의 시대, 교황청에 필요한 건 공포가 아니라 비전입니다. 인류가 어떻게 AI와 함께 살아갈지 그 길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역할 아닐까요?